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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윤 요리쌤의 오늘 뭐 먹지_경양식

“빵으로 하실래요. 밥으로 하실래요?” 양식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해, 7살 많은 대학생 언니를 따라 나서며 첫 소풍을 갈 때처럼 설레었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지막이 클래식이 흐르고 알록달록한 스테인드 글라스 전등이 어둑한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윤이 반질반질한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흰 셔츠에 검은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다가와 존댓말로 주문을 받는다.

 

스파게티를 먹을까 함박스텍으로 할까 잠시 갈등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양식인데 칼 질을 하겠다는 각오로 비후까스를 먹기로 했다.

 

“빵으로 하실래요? 라이스로 하실래요?” 밥 대신 라이스란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선택권이 주워진다는 건 왠지 모르게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식기 전에 먹으라는 걸쭉한 크림 스프에 따뜻하게 데워진 버터 롤빵을 찍어 먹었다.

 

케첩에 마요네즈를 적당히 섞은 드레싱에 버무린 양배추 사라다와 함께 갈색소스로 반쯤 덥힌 납작한 쇠고기 튀김과 밥그릇 모양으로 동그랗게 퍼 담은 쌀밥, 애교로 얹은 단무지가 올라간 큰 접시 하나를 야무지게 해치우고 나니 조금은 더 어른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반찬거리로 남은 야채와 햄을 다져 넣고 볶은 밥에 노랗게 달걀부침을 부쳐 올리고 빨간 케첩을 뿌린 오무라이스, 쏘세지와 양파를 볶아 만능 양념 케첩으로 버무린 스파게티도 어쩌다 먹는 특별식이라고 좋아했던 시절의 얘기다.

 

 

양식이란 일본의 막부말기와 메이지 시대에 서양요리를 변형하여 현지화시킨 요리들을 뜻하는 말로 일본에서 탄생했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들어왔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양식(輕洋食)이란 단어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달걀 오믈렛과 쌀밥을 혼합한 오무라이스, 함부르그스테키라 부르던 함박스텍, 인도의 커리를 변형시킨 카레라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버터를 사용해 갈색 나게 굽는 그라티네 조리법을 모방한 그라탕, 야채를 다지고 전분을 가미해 걸쭉하게 끓인 포타쥬(크림스프), 고기와 해산물을 다져 베샤멜소스와 버무려 튀기는 크로켓을 변형시킨 고로케 등 이때 만들어진 양식은 대부분 서양요리의 기반인 프랑스의 조리법을 답습하여 탄생했다.

 

커틀렛(영국), 슈니첼(독일), 에스칼로프(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돈까츠도 양식으로 시작됐지만 현지화로 성공하여 양식 패밀리에서 독립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신 문물을 갈망하며 앞서 가고픈 욕망을 불러 일으키던 추억의 요리들을, 간간히 유행하는 복고풍에 힘입어 다시 생겨난 양식집에서 만날 수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그릴데미그라스

중구 삼일대로2길 50 오리엔스호텔 1층,

함박스텍 2만원, 비후까스 2만5천원
 

 

 

 

마크스(Mark’s)

강남구 언주로 168길 6

오무라이스 2만4천원

 

 

 

까사빠보(Casa Pavo)

중구 소공로 63 신세계백화점건물 본관 6층

함박스텍 2만8천원, 클래식오무라이스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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